직면한 일이 없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바빠보인다. 나는 눈치가 보여 화장실로 잠깐의 도피를 했다. 사실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말 급해서 온 건 아니다. 말했던 대로 잠깐의 도피. 뭔가 숨막히는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게 이럴 땐 참 불편하다. 남자들은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휴식이 용인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내가 담배를 입에 물지 않고 밖에 멀뚱멀뚱 서 있다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쟤는 저기서 뭐하고 있나'란 생각을 할 것이다.
 화장실에 들어왔지만, 막상 할 일은 없다. 이등병때도 그랬지만, 회피목적으로 화장실에 앉으면 이상하게도 변의(便意)는 씻은듯이 사라지고 마음은 평온해진다. 완벽하게 개인적인 공간.
 갑자기 귓전에 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모기다. 사무실엔 잘 나타나지 않는 모기인데, 화장실에 오니 나타났다. 손을 허우적대며 잡아보려 하지만, 행동에 제약이 많은 공간이라 쉽지 않다. 이내 모기를 잊어버리고는 다시 잡생각에 골몰한다.
갑자기 종아리가 간지러워진다. 제길, 물렸다. 임무(?)를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귀환하는 모기의 모습이 눈에 잡힌다. 내 피를 약탈하다니! 분노에 차서 손을 휘젓는다. 피로 배를 채워 움직임이 둔해진 모기는 내 손길에 그만 횡사하고 만다. 어깻죽지 부근에서 절명한 모기를 털어내고 나니 하얀 폴로티 위에 빨간 핏자국이 묻고 말았다. 기분이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SEASON 1 > 글, 그냥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장실 안  (0) 2010.08.16
빠순과 덕후  (1) 2010.02.01
사라진다는 것  (4) 2009.11.02

posted by drunkenstein

Tag //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