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을 뜬 곳은 광주 집이 아니었다. 입영지가 광주에서 꽤 먼 춘천 102보충대였기 때문에, 입대 전날 먼저 서울로 올라와 큰이모 집에서 (사회에서의 마지막)밤을 보낸 것이었다.
 일어나 간단히 세면을 하고, 갈 채비를 해서 이모집을 나섰다. 이모네 식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으로 본 TV장면이 하필이면 아침 연예프로그램에 나온 유승준이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 병역기피로 한참 시끄러울 때였다)
 엄마와 같이 길을 나섰지만, 엄마와 함께 훈련소에 갈 생각은 없었다. 훈련소까지 같이 가면 보나마나 울음이 나올텐데,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리 말씀드리면 펄펄 뛸 것이 분명했기에 일단은 함께 길을 나섰고, 택시를 잡으러 큰길가에 나와서 말씀을 드렸다. 예상대로 엄마는 펄펄 뛰셨지만 결국은 포기하셨고, 택시에는 나 혼자 올라탔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엄마를 뒤돌아 바라보는데,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택시로 10분 정도 달려 성북역에 도착했다. 청량리발 남춘천행을 끊었으나, 이모집이 가까운 성북에서도 춘천행 기차가 정차한다고 해서 성북으로 갔다. 아마 열시 근처였던 걸로 기억한다. 짧은 머리에 두꺼운 겨울파카를 입은 춘천행 여행객. 누가봐도 입영자라고 생각했으리라. 나는 기차에 올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느덧 남춘천역에 도착해 있었다. 평소엔 기차 자리에 앉자마자 잠에 빠져드는 나인데, 그날만큼은 한 숨도 이룰 수 없었다.
 남춘천역에 도착하니 역 앞 광장에 택시기사들이 즐비했다. 이모한테서 여비를 좀 받아오긴 했지만 택시를 타고 싶지는 않아서 그 옆에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탔다. 입영자들을 위해 버스노선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었다. 버스에 오르니 역시나 누가봐도 입영자들임이 분명한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다들 말없이. 전화통화 하는 사람 한 명이 없었다.
버스가 출발했고, 시가지를 지나쳐 한적한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부대 입구가 불현듯 눈에 들어왔다. 평소때라면 관심도 없을 광경이었지만, 이상하게 달리는 버스 안에서 부대 입구만 정지화면처럼 또렷이 보였다. 입대하는 길이어서였을까.

 버스가 102보충대 앞에 멈췄다. 부대입구 앞은 입대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시계나 육군수첩(지갑 겸용)을 파는 상인들이 주욱 서 있었다. 시계는 미리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사 놓았었고, 육군수첩은 필요할 것 같아서 이천원인가를 주고 하나 샀다. 밥집이 있었는데, 너무 사람이 많아 그냥 포기하고 부대로 들어갔다. 위병소 문을 지나는 줄도 모르고 기간병들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도중 무슨 전시관 같은 델 통과해서 부대 역사 그런 것들이 전시되어 있는걸 보았는데, 당연하게도 그때 보았던 내용들은 단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니 운동장 스탠드 같은 시설에 입영자들과 배웅 나온 가족들이 우루루 앉아 있었다. 아직 통제를 받고 있진 않았고, 나는 조용히 빈 자리에 앉아 멍하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들어오면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얼마 정도 시간을 보낸 후(도중에 고등학교 동창을 몇 명 만났다) 두시가 되자, 연단에 군인들이 올라오더니 주목을 시켰다. 입영행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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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unk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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