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프로젝트 기반의 일을 하는 사람이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사회에 나와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이거 니 경력에 도움 된다'는 이야기다.
졸라 멋진 말이다. 경력에 도움 된다니.
근데 이 말에는 항상 함정이 있다.
그런 일들은 보통 경력에는 도움이 되는데, 생활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경력에 도움이 되니까 야근도 빡시게 하고 휴근도 하고 수당이나 월급 못받아도 열심히(...요건 좀 찔리지만) 일한다.
근데 당장 돈은 안된다.
뭐 일을 하기야 하니까 굶어 죽지는 않지만,
천금 같은 젊음을 꼬라박으면서 일한 만큼 배부르게 살 만한 돈이 안된다.

무서운 세상이다.
'보상'은 없고 '기대감' 만 있다.
날새서 야근하고 집에서도 일하고 술마시다가도 스마트폰 메일 하나에 화들짝 놀라 일을 하면서도
적절한 (금전적)보상은 거의 없다.
사실 수당이 아닌 기본 급여만 따져도, 이게 과연 4년제 대졸자의 월급인가 하는 회의가 가끔 든다.
(사회생활 초기엔 숫자로만 따지면 꽤 되는구나... 했었는데 이게 생활을 하다보니 결코 충분한 돈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랬다.
첫직장 입사하면서 연봉협상(이라 쓰고 통보라 읽는다)을 하는데, 그런 소리를 들었다.
"원래 이업계가 초반에 짠데 나중에 갈수록 인상폭이 커진다."
뭐 그때야 그러려니 하고 말았지만(사실 그때는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못되었다),
그게 결국 따지고 보면 '당장은 택도 없는 돈을 주겠다' 는 소리였던 거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삶이 다 그모양이다.
중고등학교때는 좋은 대학과 멋진 미래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생활의 전부를 학교에다가 꼬라박은 채 살아야 하고,
대학교때는 고작 이력서에 한줄 더 쓰기 위해 인턴십이니 뭐니 하는 명목으로 착취에 가까운 짓을 당한다.
거기에다가 사회 초년생 때는 차장이나 부장이 되었을 때만을 바라보면서 역시 턱없이 부족한 보상을 받으며
굳건한 계층구조의 가장 아래층에서 빡빡 기면서 살아간다.
이런 삶에서는 '현재' 가 없다.
미녀 여대생 혹은 훈남 오빠가 가득한 명문대생,
회사의 주역이 될 촉망받는 젊은 인재,
토끼같은 마누라&자식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삶.
이게 다 '미래'에만 있다.
아니, 솔직히 미래에도 그런 삶이 있을까 싶다.

<당나귀가 너무 밝은 모습이지만, 뭐 이미지가 이것밖에 없으니. 출처: http://ko.hereisfree.com/>



낚시줄에 당근을 달아 놓고 당나귀 눈앞에 어른거리면 당나귀는 그거 먹으려고 졸라 뛴다.
그럼 당나귀는 그 당근을 먹을 수 있을까?
못먹는다. 등에 타고 있는 주인이 가려고 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이게 딱 지금 나와 내 또래 인간들의 삶인거다.
당장 먹지도 못하는 당근에 혹해서 졸라게 뛰어가는.
그래 놓고도 나중에 당근을 먹을 수 있을지, 아님 또 채찍으로 쳐맞을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
사실은 요게 진짜 비참한 거지.
당근보고 졸라 뛰어왔는데 당근을 먹을 수 있을지 아닐지는 내 의지에 달린 게 아니라는거.
나는 경력을 통해 장미빛 미래에 도달하고자 졸라 뛰어왔는데,
장미빛 미래를 던져줄 사람들은 따로 있는거다.
뭐 채용담당자나, 원청업체 담당자('갑' 이라 칭한다)나 뭐 그런 사람들. 혹은 사장님.

이야기가 좀 샜는데, 이런거저런거 다 제껴놓고 가장 큰 문제는 '현재가 없다' 는 거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만으로도 현재가 행복한 사람들은 정말 복받은 사람들이다.
졸라 바람직한 미래의 일꾼. 보통 세상에선 그런 사람들을 '인재' 라고 하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기대감만으로 배부르지가 못하다.
삶은 자판기 같은 거라,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밀크커피가 띵 하고 나와야 한다.
근데 돈 넣고 버튼 눌렀는데 커피가 안나온다. 아니, 나오긴 나왔는데 맹물이 나온다.
그럼 당장은 졸라 열받는 거다. 커피와 함께 하는 '차한잔의 여유'가 없어져버렸으니.
자판기 주인이 와서 커피 다시 뽑아주고, 재수좋은면 미안하다고 돈도 돌려줄 수 있겠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당장의 행복은 없는 거란 말이다.

결국 우리가 머리쓰고, 힘쓰고, 먹고, 싸고, 일하는 것 모두 행복하기 위한 거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피터지게 일하는데,
당장의 행복을 가질 수가 없다. 행복하지가 않다.
행복을 위해 일하는데 행복하지가 않다니, 이게 뭔 아이러니냐.


흥분해서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렸다.
아무튼 결론은 그거다.
기대감만으로 노동을 제공받는 세상, 졸라 웃긴 세상이라는 거.
꿈만 갖고는 이 험한 세상 살아갈 수가 없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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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unk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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